기획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무엇인가 대단한 일을 하는 것으로 생각하거나 특정한 사람이나 집단에서 하는 일쯤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실제로 기획은 1980-90년대에 소위 전략기획실이나 경영기획실과 같은 회사의 중요한 조직 단위에서 행하던 소수의 전유물이었던 경우가 있었다. 요즈음의 기획은 그렇게 거창하지 않다. 일상적인 생활, 일상적인 업무 속에서 누구나 기획을 하고 있다.
아침에 집을 나설 때 회사에 가는 방법을 고민하기도 하고, 점심 식사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를 생각하기도 한다. 평상시에는 버스를 이용하다가 폭설로 인해 지하철을 타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으며, 지하철 마저 어려워 걸어야 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고객의 클레임에 대응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부족한 주차장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도 한다. 상황의 변화는 늘 선택하고 실행하던 어떤 일들을 다른 방식으로 처리하도록 인도한다.
기획은 Why, What, How로 이루어진다.
아침에 출근해서 상사에게 ‘구매비용 절감’을 주제로 기획안을 만들라는 지시를 받았다. 당신은 이 일을 어디에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한가? 당신이 일하는 모습을 떠올려보라.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선명한 그림이 그려지는가?
상사가 당신에게 기대하는 것은 무엇인가? 낭비요인이 무엇인지 찾아서 대응방안을 만들라는 것인가? 구매시스템을 개선하라는 것인가? 혹시 비용집행 절차를 개선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까? 아니면 이미 만들어진 여러가지 대안을 검토하라는 것일 수도 있다. 할 일이란 설사 그것이 주어진 것이라 하더라도 그 일을 수행하는 구체적인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그렇다면 기획이란 무엇일까? 여러 학문 분야에서 기획에 대해 정의하고 있다. 행정학에서 기획은 ‘어떤 대상에 대해 그 대상의 변화를 가져올 목적을 확인하고, 그 목적을 성취하는 데에 가장 적합한 행동을 설계하는 것’[1]이라고 정의된다. 교육학에서는 ‘경쟁목표의 달성을 위하여 합리적인 여러 정책방안을 준비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다.[2] 국방사전에는 ‘예상되는 위협을 분석하여 국방목표를 설정하고, 대응전략 수립 및 군사력 소요를 제기하며, 적정수준의 군사력을 효과적으로 육성하기 위한 제반 정책을 수립하는 과정’이라고 되어 있다.[3] 이러한 기획의 개념들은 모두 하나의 공통점을 갖는다. 바로 ‘과정’으로서의 기획이다. 제시된 정의들은 모두 행동이나 방안, 정책과 같은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물을 다른 말로 정리하자면 ‘계획’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기획은 결과물인 계획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고, 그 결과 기획은 계획과 구별되지 않은 채로 사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엄밀하게 따져보면 기획과 계획은 다른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기획이란 용어에 좀 더 근원적으로 접근해 보자. 기획의 사전적 뜻은 ‘일을 꾀하여(꾸미어) 계획한다’[4]이다. 이 말을 파헤치면 두 가지 의미를 추출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일을 ‘꾀하다’와 ‘계획하다’이다. 이 2가지 의미를 잘 따져 보면 기획과 계획의 개념적 차이를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꾀하다(꾸미다)’에 주목해 보자. ‘꾀하다’라는 말은 어떤 일을 이루려고 뜻을 두는 것이라고 한다. 뜻이란 나아가는 방향이다. 또 그 방향은 당연히 올바른 방향이어야 한다. 따라서 ‘올바른 방향을 정하는 것’이 ‘꾀하다’이다. 우리가 길을 나서면 방향을 정하고, 시간과 방법을 고려하여 움직인다. 그때그때 내키는 대로 발걸음을 옮기지는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일을 할 때 일하는 사람이 임의로 정하거나 하고 싶은 것을 해서는 안 된다. 그 일을 해야 하는 합리적인 이유, 타당성을 확보하고 나서 시작해야 한다. 다시 말하자면 ‘그 일을 왜 해야 하는가(Why to do)’를 다루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일을 꾀한다’는 것은 일이 비롯된 상황을 인식하고, 그 상황 속에서 일을 해야 하는 이유(Why)를 확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 일이 비롯된 상황을 ‘배경’이고, 배경 속에서 확인한 일을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목적’이다.
다른 한편 ‘계획하다’는 어떤 의미일까? 계획은 ‘어떻게(How)’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앞에서 이해한 ‘꾀하는 일’에 대해 절차와 방법, 규모를 헤아려 수행해 나가는 것[5]이 ‘어떻게’이다. 실무적으로는 누가(조직계획), 언제(일정계획), 얼마의 돈을 들여(재무계획) 일을 수행해 나갈 것인가를 헤아리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계획은 머리 속의 과정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몸이 움직이는 구체적인 실천의 모습으로 이해해야 한다. 방향을 정하고 그 방향을 향해 움직여 나가는 것이 계획이다. 꾀하는 일의 구체적인 도달점을 향해 가는 것이 계획이다. 그래서 계획은 기획의 결과물인 것이며 기획과 분리되어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다.
기획은 과정이며 동시에 결과이다. 해야 하는 일의 정당성을 찾아 올바른 방향성을 정하고, 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기획이다.
기획은 Why(방향), What(일), How(실행)의
3가지 요소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필자는 “Do the right things right!”라는 문장을 좋아한다. 짧은 문장이지만 2가지 해석의 방향이 있다. 그 하나는 “Do the things right”이다. 소위 ‘일을 제대로 하라’의 의미로 해석하면 좋겠다. 다른 하나는 “Do the right things”이다. ‘올바른 일을 하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당신이라면 어느 쪽에 관심이 많은가? 어느 쪽이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가? 전자는 ‘How to do’를, 후자는 ‘What to do’를 강조하는 말이다.
아주 오랜 기간 동안 ‘How to do’는 일 처리 능력의 핵심이었다. ‘일 좀 똑바로 해!’라는 상사의 지적을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실무자가 기획을 한다고 하면 바로 이 ‘어떻게’를 수행해 나가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무자는 그저 경영자의 의도가 무엇이건 실무적으로 주어진 과제를 절차에 따라 잘 수행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do the things right’는 너무나 당연한 능력이 되어버렸다. 지식수준이 높아지고, 경험이 쌓이면서 조직 내에서 일을 똑바로 하라는 말은 거의 사라졌다. 반대로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 즉 ‘the things’는 ‘과연 그 일을 해야 해?’라는 의문을 만들어 내고 있다. 짧은 시간 동안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정말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의사결정을 하는 경영자뿐 아니라 일선의 실무자에게도 중요해졌다. 해결책을 잘못 만들어서 실패하는 경우보다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실패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오늘날의 기획은
‘the right things’를 실행하는 것,‘
What to do’에 좀 더 큰 방점이 찍힌다.
‘How to do’를 중시하는 기획은 업무가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경우에는 큰 힘을 발휘한다. 과거에는 일상적인 업무에서 ‘해야 하는 일’이란 늘 정해져 있었고, 새로운 일을 한다고 해도 이전에 해 왔던 일과 그다지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업무환경에서 과제가 반복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는 어제와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해야 할 일이 만들어진다. 어제와 오늘이 다른 환경에서 어떻게(How)의 의미는 2차적인 것이 된다. 무엇을 할 것인가(What to do), 즉 일을 꾸미는 것을 우선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오늘날의 기획의 의미는 ‘어떻게’라는 절차적 의미보다는 ‘무엇을’이라는 의사결정의 의미가 더 강조된다. 그렇다면 해야 할 무엇을 결정하는 것, 즉 과제 설정은 기획의 전 과정에서 가장 먼저,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의 필요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다음글: 제1강 문제를 찾아 해야 할 일을 설정한다(2) - 명확화 https://vivahkt.tistory.com/3
현경택. 2013. "기획력강의". 동문통책방.
'기획_보고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획력 강의 4강. 해결안을 만드는 기획 - 가설검증기획 (0) | 2021.08.03 |
---|---|
기획력 강의 3강. 해결안을 찾는 기획 - 문제해결기획 (0) | 2021.08.03 |
기획력 강의 2강. 목적과 목표 (0) | 2021.08.02 |
기획력 강의 1강_(3)상황별 해결과제 (0) | 2021.07.28 |
기획력 강의 1강_(2)문제와 과제 (0) | 2021.07.28 |